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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체험(성녀 데레사의 회심 체험과 인격적 변화)-성녀 데레사의 생애

성엘리야리베르또 2023. 8. 7. 16:16

1) 성녀 데레사의 출생과 어린 시절

아빌라의 데레사로 더 잘 알려진 예수의 데레사(세페다와 아후마다의 데레사는 성 요셉 수녀원이 창립되고 나서 얼마 후에 수도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소년 예수를 만난다. 예수님께서 "나는 데레사의 예수이다. 너는 누구인가?" 하자 데레사는 "나는 예수의 데레사입니다."라고 응답하였다. 이후 세페다와 아후마다의 데레사는 자신의 이름을 '예수의 데레사'라고 칭하였다. 이후에 맨발 가르멜 수도자들은 수도명 앞에 각기 자신들의 성소를 드러내는 현의를 덧붙이게 되었다.) 성녀는 1515년 3월 28일 수요일 새벽 성인, 돌, 기사로 유명한, 카스티야 중심부의 옛 도시에서 출생했다.(성녀의 생애는 출생으로부터 선종하는 날까지 자서전을 통해 세 부분으로 그 일생을 구분할 수 있다.

(1) 태어나서 부모의 슬하에서 가족적인 분위기 안에 여러 형제들 사이에 성장해 가는 20년간(1515-1535년).

(2) 수도원 입회로부터 기도를 통해 독창적인 하느님 체험을 깊이 하고 난 후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세우게 되는 27년간           (1535-1562년).

(3) 수도원 창설자로서 살게 된 20년간(1562-1582년); 

성녀의 양친인 세페다의 알론소 산체스(성녀의 아버지알론소는 두 번 결혼하였다. 그의 첫째 아내 페소의 가타리나는 1507년에 두 아이를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알론소는 2년 후 아우마다의 베아트리스와 결혼하여 열 자녀를 두었다. 데레사는 이 둘째 아내의 셋째 아이였다. 알론소는 온화하고 겸허하며 또한 명상적인 기질이 있었고, 행동이나 걸음걸이도 점잖았으며 더구나 품행이 단정했다고 한다. 와 아우마다의 도냐 베아트리스는 중류 계급에 속했다.

아버지 알론소의 기질은 조용하고 가정적인 사람으로, 책이 가득 찬 그의 서재에서 장서를 애독하는 편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데레사는 이러한 다소 완소 하지만 소상한 기품 안에 숨겨진 깊은 애정과 인자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양서들을 즐겨 읽었고 자녀들을 위해선 카스티야 말로 된 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양서와 어머니가         우리에게 길들여 주신 기도와 성모님과 몇몇 성인들에게 신심을 갖도록 보살펴 주신 정성 어린 마음씨 격분으로 나는          6,7세 때부터 경건한 성품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덕행에 힘쓰는 양친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습

    니다. 두 분은 많은 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애덕을 크게 베풀렀고 앓는 사람이나 하인들에게도 따뜻한 동정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노예를 부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 아버지는 언제나 진실을 말하여였고 헛맹세를 하거나 남을 헐뜯는 일은 없었으며 늘 단정하고 근엄한 몸가짐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많은 덕을 갖추       셨는데 몹시 병약한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매우 겸손한 분이었고 곱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을 자랑삼는     일은 없었습니다. 

데레사의 어머니 베아트리스는 이런 남편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아내였다. 온화하고 진중하였으며 신심이 매우 깊었다. 아이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성모께 관한 신심을 심어 준 것도 이 어머니였다. 

데레사는 그 당시의 귀족 자녀들이 받은 교육을 받아 아주 어릴 때부터 읽기를 배웠다. 형제들과 함께 성인전능 읽고, 그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순교자들의 이야기에는 가슴이 설렜을 것이다. 이와 같은 깊은 종교적 분위기는 데레사의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데레사가 일곱 살이던 어느 날 오빠 로드리고와 같이 하느님을 위한 사랑으로 구걸하면서 무어인의 나라를 찾아 나선 일이 있었다. 둘 다 거기에서 목을 잘리고 싶어서였다. 데레사는 로드리고와 아프리카를 향하여 여행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나다가 아빌라 성 밖의 낡은 다리 위에서 삼촌이게 발견 되어 집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순교에 대한 계획이 깨어지자 데레사의 어린애 같은 상상력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세계로 향했다. 데레사는 공상의 세계에서 살았고, 은수자같이 행동했고, 혼자 기도했으며, 묵주기도를 바치고, 작은 수녀원들을 만들어 사촌들에게 자신이 만든 규칙을 지키고 또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게하며 자신의 꿈과 환시를 따르게 했다. 이러한 공상의 세계 안에서의 생활은 데레사가 13세 때인 1528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깨어졌다. 그리고 데레사는 예민하고 어려운 사춘기를 혼자 보내게 되었다. 외로움 속에서 데레사는 성모님께 매달렸다. 

 

나는 내가 어떠한 존재를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깨닫기 시작하였을 때 슬픔에 잠겨 성모상 앞에 가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성모님의 어머니를 대신해 주시도록 간절히 원했습니다. 비록 내 기도는 단순한 것이었으나 잘 들어주셨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성모님께 의탁하고 바랄 적마다 늘 도움을 받아 온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성모님은 나를 당신 곁으로 부르셨습니다. 

 

15살이 되었을 때, 데레사는 발랄하고 아름다운 만큼 허영심이 강했다. 천성적으로 남과 쉽게 사귀며, 열정적이고 사랑스러웠다. 데레사는 처음으로 여성의 본능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기를 갈망했다. 손과 머리 손질을 특별히 하고 향수를 뿌리고 유행에 따른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장식품을 좋아하고, 외적인 몸치장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데레사도 평범한 여인이었다. 

 

내 지향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도 나 때문에 하느님께 죄를 짓는 기회를 주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입니다. 지나친 몸단장 같은 것들을 심히 좋아하는 취향이 꽤 오래 나에게 남아 있었으나 거기에 무슨 죄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옳지 못한 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쪽으로 사촌 형제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몇 명은 경박하고 세속적이었다. 아버지가 식구들을 감시하였지만 사랑하는 딸 데레사는 위험하고 죄로 기울어지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데레사가 살고 있던 옆집에 프란치스코 삼촌이 살았는데 그 집에는 아들 넷과 딸 넷이 있었다. 그 아들 중 하나가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데레사를 흠모하고 사랑했으며, 그 딸들 중 하나가 데레사를 나쁜 길로 이끌어 갔다.

 

나는 온갖 나쁜 짓은 다 배웠다.--- 이 친척 언니와 만나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자주 잡담을 나누었습니다. ---

아버지와 언니는 이 친척 언니와 사귀는 것을 언짢아하며 가끔 나를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그 언니를 우리 집에 오지 못하게 할 수가 없었기에 그분들의 세심한 주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나는 그릇된 것에도 퍽 솜씨가 좋았으니까요. --- 나는 애 영혼 안에 간직하고 있던 좋은 성향과 덕을 거의 다 잃어버렸습니다. --- 이 소녀와 허영에 빠져 있던 또 하나의 친구가 그네들이 하는 짓을 내게 전염식켜 버렸던 것입니다. --- 그다음에 나쁜 일을 하는 데는 내 그릇된 생각만으로도 족했습니다. 그런 데다가 온갖 옳지 못한 짓들을 하는 데 우리 집 하녀들한테서도 협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데레사를 구제할 수 있었던 한 가지 덕행은 세상의 명예로 여겨지는 것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자신의 용기였다.

데레사는 이것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보다 명예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데레사로 하여금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게 하였다. 

 

2) 은총의 성모 수녀원 학교

아버지와 큰언니 마리아는 재주 많고 조숙한 데레사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위험은 미리 예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큰딸 마리아가 결혼하여 카스테야노스로 떠나 버린 후, 데레사를 아우그스티노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은총의 성모 수녀원 학교'로 보내기로 했다. 데레사는 세속적인 친구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계획은 비밀리에 행해졌고 몇몇 친척들에게만 알려졌다. 

 

아버지는 나를 무척 사랑하셨고, 무엇이나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도록 내가 영리하게 하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내가 사실처럼 죄가 깊다고 생각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총애를 잃지 않았습니다. 

 

엄격한 생활 가운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아우구스티노회 수녀들이 데레사에게 감화를 주었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곧 이 의지가 강한 숙녀는 생활에 안정을 얻게 되었다. 데레사는 매력적이고 똑똑해서 많은 친구를 얻게 되었다. 

 

저에 대해 수녀님들은 만족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저에게 저와 함께 지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디서나 만족스러움을 줄 수 잇는 은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데레사는 아빌라에서 가장 명판 좋은 가문 출신인 브리세뇨의 마리라 수녀를 좋아했다. 겸손하고 성스러운 마리아 선생 수녀는 기숙생들과 함께 지냈으며, 데레사와 여러 차례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 평화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데레사는 처음으로 수도 생활에 대한 부르심을 느꼈다. 그러나 데레사는 그 성소에 저항했고 내적인 투쟁을 겪어야 했다. 

 

당시 나는 수도 생활이란 딱 질색이었습니다. 

 

데레사가 자신의 일생과 사랑을 한 인간인 남편에게 바칠 것인가 혹은 천상의 정배에게 바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 당시 데레사의 마음은 굳어 있었고 세속적이었다. 기도가 어려웠으며 성주 간에 예수님의 수난사를 들어도 한 방울의 눈물조차 흘린 수 없었다. 데레사는 결혼하는 것도 두려웠고, 수녀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어떤 친구는 데레사에게 수도 성소가 있다고 격려해 주었고 또 다른 친구는 결혼하라고 권했다. 수녀들은 과연 데레사가 수녀가 될 수 있을까 의심했다. 

데레사는 자신의 과거가 두려웠고 장래는 분명하지 않았다. 데레사는 아직도 쾌락과 허영으로 가득했고 영성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데레사는 고백한다. 

 

수도 생활을 하려는 좋은 희망이 가끔 일어나기는 했습니다만 곧 가셔지곤 해서 나는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습니다. --- 수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하느님이 수도 생활로는 부르시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혼 생활도 두려워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회 수녀들의 엄격하고도 활기 찬 생활은 해이한 생활에 젖은 데레사에게 너무 힘든 것이었다. 한편 가르멜 수녀이면서 친구였던 요안나 수아레스가 "관능과 허영의 만족을 찾던" 숙녀 데레사의 마음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녀는 데레사가 자기의 마음을 끄는 가르멜 수녀원에서 찾고 잇던 그러한 수녀였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은밀히 부르고 계셨고 데레사는 그 성소에 응답해야 됨을 느끼게 되었다. 

1532년에 데레사는 중명에 걸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좀 엄격하기는 하지만 매우 신심 깊은 베드로 숙부댁에 얼마 동안 묵게 되었을 때 그는 데레사에게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신심 서적을 읽게 했다. 이 일은 데레사에게 어릴 때 배운 진리를 재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데레사의 마음속에 깊은 데서 들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은, 감각적인 매력에 사로잡혀 현세의 행복이 부르는 강한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데레사는 수도 생활의 선택을 결심하도록 자신을 설득시키려 했다. 석 달 동안 계속된 이 심적 투쟁은 너무나 격렬하여 또다시 열과 심한 쇠약 증세를 동반한 병에 걸렸다. 

가족들의 아낌없는 사라과 정성을 받으며 1533년 봄, 데레사는 자신의 장래에 관하여 심사숙고하였다. 데레사는 성 예로니모의 서간집을 읽에 되었고 거기에서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 길은 스도 생활에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아직도 수도 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은 하지 못했으나 그 신분이 가장 좋고 제일 확실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생활을 하려고 차츰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수도 생활 괴로움과 번민이 제아무리 크다 한들 연옥만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지옥에나 갈 위인이 아닌가---, 나로 하여금 수도 생활에 들어가도록 결심하게 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노예적인 두려움이어ㅆ다고 생각됩니다. 

 

드디어 영원한 행복에 대한 소망이 자기가 단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디던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 자극을 받아 데레사 안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일을 아버지에게 말씀그렸을 때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알론소는 다만 자기가 죽은 다음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무엇이나 한번 말한 것은 취소하지 않는 데레사였으나, 즉시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이 일을 두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의 결심이 약해지는 것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현세의 행복과 즐거움에 대한 자연스러운 집착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놀이 상대였던 로드리고 오빠가 1535년 8월 신대륙으로 출발하기까지 2년 동안 데레사는 그대로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535년 11월 2일, 한 형제와 함께 데레사는 북쪽 성벽 바깥쪽에 위치한 그리고 아자트 강의 맞은편 낮은 언덕 위에 잇는 강생 가르멜 수도원으로 새벽같이 집을 떠났다. 

 

3) 회심 전의 핵심 체험

아빌라에 있는 강생 가르멜 수도회는 데레사가 입회하기 56년 전에 창립되었다. 1512년 14명의 착한 여인들이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와 12사도를 공경하기 위하여 한 작은 공동체를 구성했고 기도 생활에 자신들을 봉헌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전에 다른 많은 수도회가 그러했듯이 강생 가르멜 수도원은 그 수도회의 초창기의 정신과 사명을 잃어버렸다. 엄격한 봉쇄 규칙을 지키지 않았고, 언제나 방문객이 허락되었다. 수녀들은 개인 재산을 소유했고 가문이 좋은 여인들은 특혜와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침묵이 지켜지지 않았고 180명이 함께 사는 공동체 안에서 수련 생활과 관상 생활을 기대할 수 없었다. 

아우마다의 데레사는 1536년 11월 2일 가르멜 수도회의 수도복을 받았다. 한 사람의 수련생으로 데레사는 규칙적인 수도 생활을 했다. 일주일에 세 번 단식 극기를 했고, 매일 미사에 참여했고, 대축일과 성인 축일과 성삼일에 영성체했으며, 규칙적인 고해성사를 보았다. 성무일도를 매일 바쳤고 밤에는 침묵을 지켰으며, 공동 고백을 하는 등 틀에 박힌 일과를 보냈다. 데레사는 은혜, 기쁨, 온유함, 환희 같은 낱말로써 수도 생활의 첫 열정을 노래한다. 수련 기간은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의 기간으로 느껴졌고 천하게 생각하던 노동을 기쁘게 하게 되었다. 

 

전에는 내 나름의 즐거움이나 몸치장을 위해 보냈던 시간에 청소하러 가는 일이 있으면, 이제 그런 쓸데없는 짓에서 해방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기쁨이 내 영혼에 넘쳤습니다. 

 

데레사는 1537년 11월 3일 첫 서원을 했다. 그때의 나이는 22세였다. 데레사는 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을 했고 좋은 가르멜 수녀가 되어 주님의 정배가 되기로 결심했다. 

데레사는 열심히 그 새로운 생활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데레사는 수도 생활로 들어서자마자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서 자기를 이겨 낼 줄 아는 이에게 하느님이 얼마나 잘 보답해 주시는가를 뻐저리게 체험했다. 천성적으로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데레사는 영적 세계의 풍요함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그러나 서원하고 2년 후에 예민한 체질은 환경과 음식의 변화와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빠져 데레사는 중병에 걸기고 말았다. 아빌라의 의사들의 치료가 아무 효과가 없자 매우 상심한 아버지는 그곳에서 60킬로미터쯤 떨어진 벳세다스에 사는 여자 치료사에게로 데레사를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1538년 가을 데레사는 아버지와 동료 수녀인 요한나 수아레스와 함께 수도원을 떠나 카스테야 노스의 마리아 언니 집으로 갔다. 이 세 사람은 도중에 오르티고사에 살고 있는 베드로 숙부 댁에 들렀다. 베드로는 조카 데레사에게 1527년 툴레도에서 출판된 책 한 권을 주었다. <제삼 기도초보>라는 제목이었다.(저자는 프란치스코회의 오수나 신부(Francesco de Osuna, OFM, 1492-1540)로서 영적인 표현을 알파벳 순서로 말해 나가면서, 묵상기도라 불리는 개인적 기도의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으므로 초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다. 그는 그 책에서 거둠 기도를 실천하던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영성가들이 널리 사용하고 있던 거둠의 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방법이란 자기 자신 안에 들어가는 것, 바깥 세계에 대해서 자기를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로 만들 것과 하느님께만 마음의 눈길을 돌리고, 여러 가지 쓸데없는 잡념이라든가, 영상에서 벗어나가 위해서 아무것도 생각지 않는 것이었다. 이 가르침은 데레사가 후일에 반대한 몇 가지의 위험을 안고 있는 했지만, 설명하고 있는 주관은 데레사에게 매우 적합하였다. 그것은 사상적 논리의 연결보다는 오히려 영혼의 정서적인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하느님을 행해 가는 단순한 방법에 대한 서술이었다. 에마뉘엘르노, 앞의 책 23.)

데레사의 묵상은 여러 곳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묵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주 독서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익하고 필요합니다. --- 시련과 메마름으로 보낸 지난 18년 동안을 나는 책 없이 기도드릴 용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내 영혼은 책의 도움 없이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마치 떼 지어 덤벼드는 적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될 때와 같은 공포를 느꼈습니다. 책은 무수한 잡념의 화살에서 나를 지켜 주는 방패의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 책과 고요함만이 이 커다란 축복울 간직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데레사는 기도 생활에 책과 침묵이 큰 도움이 됨을 깨달았다. 그해 겨울을 카스테야노스의 언니 마리아의 집에서 푸른 하늘과 들과 숲과 강에 둘러싸여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4) 투병 생활을 통한 자기 극복과 기도의 발견

델사는 베세다스에 3개월간 머물며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돌팔이 이사의 치료 방법은 데레사의 건강을 더 악화시켰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맛보았으며 심장의 괴로움도 점점 더해 가서 때로는 날카로운 이빨이 심장을 물어뜯는 듯하였습니다. 모두들 광견병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했습니다. 

 

2개월 후, 데레사는 유동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식욕은 전혀 없고, 열도 내리지 않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통증을 동반한 신경성 경련 일이 고--- 언제나 밝았던 데레사에게 일어난 이와 같은 심각한 증상은 마침내 데레사를"매우 깊은 슬픔의 심연"에 빠뜨렸다.   

아버지는 데레사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데레사를 진찰한 아빌라의 의사들은 불치의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데레사는 1539년 8월 15일 혼수상태에 빠져 그대로 죽은 사람과도 같았다. 사실, 사람들은 데레사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탄에 잠겨 있던 아버지 알론소는 데레사를 매장하는 것을 절대로 바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데레사는 생기를 얻었다. 아직 살아 있다 해도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몸은 열 때문에 공처럼 둥굴게 말려 오그라지고--- 나는 아부 죽은 사람과 만찬가지로 팔, 다리, 손, 머리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모두 나에게 어떻게 손을 대야 좋을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레사는 수도원에 돌아가기를 원하였다. 데레사는 너무도 말라서 "뼈와 가죽"뿐이었다. 상태가 다소 좋아지기는 했지만 3년 정도 몸을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 "내가 처음으로 기어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동안 데레사는 놀랄 정도의 인내심을 보였으며,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의지했다. 데레사는 미소를 되찾았다. 자신의 몸이 평생 마비가 된다는 생각도 태연히 받아들였다. 성격이 끗끗하여 불평 한마디 없던 데레사는 끊임없이 실행하고 있던 묵상에서 자기를 이겨 내는 힘과 큰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좋은 책을 읽었고,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겨 드렸고 고독을 즐겼다. 

데레사는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30대에 이르렀다. 강생 가르멜 수녀원은 아빌라 도시 귀족들의 자선에 많이 의지 하고 있었던 까닭에 귀족들 중의 많은 젊은이가 총명한 데레사 수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수녀원 응접실을 방문하였다. 

데레사의 말하는 태도는 밝고 명랑했으며, 대화 내용은 유머가 곁들여져 상쾌하면서도 섬세하고, 단순하면서도 감성이 풍부했고 또 신중하였다. 데레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데레사의 온화한 말씨는 다른 사람을 납득시키기 쉽게 했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부드럽게 녹여 주었다. 데레사는 말을 우아하게 잘할 수 있는 재능과 또한 자기가 원하는 목적에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평범하지 않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데레사는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고자 하는 아주 강한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 속에서 데레사의 열성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데레사는 반(半)은 하느님을 향하고 반은 하느님을 향하고 반은 세석을 향하고 있느 내면적인 분열을 견딜 수없게 되었다.  

내 생활은 무척 괴로웠습니다.--- 한편에서 하느님이 나를 부르시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 나는 세속을 쫓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영적 생활과 거기에서 오는 위로와, 관능적 생활의 향락과 기분 전환ㅇ라는 전연 반대되는 이 두 가지를 타협시켜 보려고 ㅎㅆ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나는 하느님과 즐길 수도 없었고, 세상에서 만족을 찾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세속적인 기쁨이 한창일 때는 하느님에 대한 내 의무를 생각하고 슬퍼하였고, 하느님과 함께 있을 때는 세속적 애정으로 마음이 산란했습니다. 

 

이처럼 정직한 데레사는 특히 특히 주님과 함께 있을 때면 이와 같은 마음의 상태에 무언지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예리하게 느꼈다. 

1543년 말, 58세의 알론소는 건강이 쇠약하였다. 1543년 12월 24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데레사는 "자기의 넋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데레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 알론소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이 거대한 애정의 소멸과 데레사가 느낀 내면의 공허함, 그리고 매우 덕이 높고 배운 것을 몸소 실천한 이 아버지의 모범적인 모습과 양심의 호소에 응답하여 그때까지 취해 왔던 애매한 태도를 버릴 결심을 촉구하였으련만, 불행하게도 수녀원 고해신부들과 많은 친구들과 주위 환경은 데레사에게 세속적인 교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이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고해신부였던 도미키코회 수사 비센테 바론 신부의 신앙심 깊은 학식에 감동되어 데레사는 점차로 그에게 마음을 고백했다. 그는 2주에 한 번씩 영성체 하도록 해 줌으로써 데레사에게 힘을 주고, 나아가 1554년 초엽에 다시 시도를 시작하도록 권고했다. 

 

기도를 버린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미 불가능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사랑하고 좀 더 높은 은총을 베푸시려고 하였던 그분이 손수 나를 지탱해 주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기도하는 영혼들에게, 특히 처음에는 격겨해 주고 일깨움을 줄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친구들과의 사귐과 우정을 갖도록 권고한다. 

 

지금까지 데레사에게 있었던 회심 이전의 핵심 체험을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수녀가 되기를 질색하리만큼 싫어했던 데레사는 비록 연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녀원에 입회하게 되지만 질병을 통해서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특별히 오스나 신부의 저서를 통해서 다시 시작하게 된 기도는 회심의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서 데레사의 회심의 과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데레사의 회심은 1차 회심과 2차 회심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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