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철학적 관점에서 본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이해의 틀을 바탕으로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영성적 비전과 어떤 과계를 갖는지 살펴보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영성적 존재이다.
그는 이미 본성적으로 초월적 존재를 지향하며 다양한 차원에서 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 글은 이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시도했으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가 본성적으로 지닌 다양한 차원이 내포한 영성적 함의(含意)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우리는 철학적 전망에서 드러나는 대표적인 인간 이해의 틀이 영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보았다. 플라톤적 전망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은 영혼으로서 영혼의 내적 구조는 후대 그리스도교 영성가들에게 영적 역동성을 말할 수 있게 하는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이 전망에서 이데아 세계에서 나와 다시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과제를 안고 있는 인간 영혼의 모습 역시 그리스도교 영성가들에게 영적 여정에 대한 이론적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하는 단일한 인간존재의 전망, 그리고 무억보다 육체에 대한 긍정적 전망은 자칫 그리스도교 영성이 영적으로, 내세적으로 치우칠 수 있는 상황에 균형추 역할을 해 주었으며 현세 실재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본 것은 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무엇보다 인간 인격이 지닌 대화적 구조는 그가 이미 본성적으로 타자(他者)를 향해 개방된 존재임을 시사한다. 그는 미완의 존재로서 세계 내에 존재하는 여타 다른 인격체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자신을 실현하며 인격체로 완성되어 갈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자기 실험에 있어서 '절대적 너'로 계시되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유일한 모상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인간의 자기실현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 발전 여부에 달려 있다.
이처럼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영적 영적은 이미 인격적 존재로 창조된 인간 본성 안에서부터 준비되고 있으며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이러한 본성적 차원을 초본성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인간 존재의 영성적 차원은 그가 지닌 역사적 차원을 통해 고유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본성적 가능성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역사성은 무엇보다 그가 지닌 자유 의지에서 기원하며 이와 함께 그가 시공 안에 존재하는 세계 내 존재 양식과도 맞물려 있다. 그는 세계 안에서 조우하는 수많은 실재와 사건 앞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결단하며 투신하는 가운데 자신을 형성해 간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역사를 결정짓는다.
이러한 그의 역사성 역시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가능케 하는 단초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실존적 결단의 대상이 하느님으로 화장될 때 그것이 곧 구원 역사이며 이 역사가 곧 그의 개별 영성의 바탕이 된다.
또한 인간 실존을 구정 짓는 생물학적 요소인 '성'(性)은 그의 사고와 행동 양식의 바탕으로서 그가 여타 다른 인격체들과 맺는 관계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관계 맺음의 차별화는 하느님과의 관계에도 중요한 요소로 드러난다. 이로 인해 맘성과 여성이 그분과 맺는 관계의 양상을 바탕으로 우리는 차별화된 남성 영성과 여성 영성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문화가 영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문화적 존재이다. 인간은 이미 이룩된 일정한 문화에서 탄생해 자라며 그 문화로부터 무수한 요소를 받아들여 자신을 형성해 간다. 그리고 역으로 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 창출에 기여한다. 이러한 문화적 코드에 대한 이해 없이 실존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있을 수 없다. 실존하는 인간 존재의 토대가 되는 문화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 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 인간이 실존하는 문화적 삶의 자리에 대한 성찰과 이에 대한 영성적 차원에서의 적용은 영성 생활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준다.
다시 언급하거니와, 인간은 본성적으로 영성적 존재이다. 그가 하느님을 믿든 믿지 않든 그는 이미 하느님을 향한 지향성을 자신 안에 간직한 초월적 존재이다. 그가 지닌 다양한 차원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에 대한 그리스도교 관점에서의 성찰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영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한 인간의 자기실현 과정에서 영적 성숙에 이를 수 있는지 다양한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철학적 인간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 비로소 인간 존재의 심오한 신비를 해명할 수 있다. 또한 역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은 철학적 인간학이 제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다양한 설명과 더불어 보다 깊이 잇는 영성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