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온 것들의 논리적인 결과로써, 다음과 같은 중요한 자료가 나올 수 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에게 있어서 인간은 그 자체로서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구조적인 연관성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존재이고, 스스로 충만하게 실현되는, 즉 자신의 완성과 인격적인 충만함을 스스로 이룩해 내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 하느님께 전적으로 애착함으로써 이를 얻어 내는 존재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활동, 항상 은총의 활동인 이 활동이 하느님 안에서 인간 실존의 기초를 놀아 주고 인간 실존을 유지하며 인간 실존을 이끌어 준다. 하느님은 인간의 근원이자 목적이시다. 따라서 이 하느님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의미의 충만함"이신 것이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에게 있어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활동은, 창조의 질서에 있어서나 구원의 질서에 있어서나, 인간의 존재 자체 안에 바쳐 보이는 분이시고, 인간 실존에 가치(價値)를 부여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은 결국 하느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존재로서 어떤 "의무를 진" 그런 존재인 것이다.
"--- 하느님께 무한한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오로지 당신만을 향하도록 창조하셨으니 영혼은 하느님께 대해 평생 동안 봉사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고, 오로지 당신만이 구원하셨으니 영혼은 다른 모든 것과 자기 의지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응답을 드려야 할 의무를 지고 있고, 또 수많은 다른 은혜들로 말미암아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느님께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다."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유대 관계가 이루어져 있다. 이 유대 관계란 바로 은총인데, 이는 인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유대 관계는, 비록 인간이 그것을 무시하거나 인정하기를 거절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은총 안에서 하느님에 의해 사랑받고 창조되었으며 자신의 창조주께로 향한 전 존재의 근원적인 성향(性向)을 하느님께로부터 받고 있는 인간은, "근원적으로 또 자연적으로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삶을 누린다."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은 "하느님 안에서 자연적 삶을 누리는 것이다."
인간은 이 하느님과의 전적인 유대 관계를 벗어나면 자신의 실체(實體)를 잃어버리게 될 거시므로, 하느님과 자신을 영원히 묶어 주는 이 유대 관계가 없을 때에는 자신의 모든 존재론적(存在論的) 확실성(確實性)을 다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성인의 말을 빌려 간단히 표현하자면, "그 존재는 없어지고 무(無)로 돌아갈" 것이다.
이 장(章)의 서두에서 우리는 이미,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의 핵심과도 같은 "인간이 그리스도를 향해 예정되어 있음"을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시각에 따라 살펴보았다. 인간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예정"이다. 은총의 계획 안에서 사랑받고 창조된 존재로서 인간은 오직 하느님의 그 계획에 완전히 자신을 합치시킴으로써만 -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 넘치는 통교에 대해 자신을 열고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그 하느님의 자기 전달에 응답함으로써만 - 자신의 완성과 충만한 실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이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하고 거절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망쳐 버릴 것이다. 이는 인간의 실존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본질적인 연관성 안에서 자신의 모든 의미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의 관대함으로 인간 실존의 지평을 당신께로 까지 들어 올리시면서,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궁극적 목적으로서 또 인간의 충만함으로써 내어 주기 원하셨다. 그래서 인간은 이 은총의 작용 안에서 자신을 이 은총의 작용에 합치시킴으로써 받아들인 그런 의미의 충만함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에게 가장 친숙한 전망이 바로 이것이다. 이 전망으로부터 성인은 우리에게 「사랑의 산 불꽃」 안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상기시킨다.
"인간의 중심은 하느님이시다. 영혼이 자기 존재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또 자신의 모든 작용과 성향의 힘을 가지고 하느님께 도달할 때에,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가장 깊은 중심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가 바로 인간이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하느님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즐기게 되는 그때일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중심"이시고, 인간의 능력에 대한 척도이시고, 또 인간 실존의 충만함이시다. 그래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영혼이라면 어떤 영혼이라도 하느님을 진정으로 소유하기까지는 온전히 만족할 수 없는 법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으로 창조된 인간의 마음은 "하느님께 미치지 못하는 무엇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