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이미 우리는 인간에 대한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현실적인 시각(視覺)을 지적했다. 즉 인간은 역사적으로 죄(罪)의 표지를 받고 살아가는 존재이고, 이 인간 안에서 죄는 아주 뿌리 깊은 무질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언급했다. 성인에게 있어서 죄란 인간 밖으로부터 인간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인간 외적(人間外的)인 무엇이 아니다.
정반대다. 성인 안에서 우리는 죄에 대한 대단히 인간적인 개념을 만날 수 있다. 죄에 대한 성인의 시각을 성인의 말을 빌려 종합해 본다면, 죄란 "하느님을 대수롭지 않게 이기는 것"이다.
죄는 인간의 행위 전체로부터 나오는데, 말하자면 하느님을 거스르는 선택으로서, 하느님을 향하도록 되어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방향성과 질서를 거스르는 선택으로서 인간의 행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죄는 어떤 규범들에 대한 불복도 아니고, 율법을 위반하는 것도 아니다. 죄는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 앞에서 저지르는 어떤 이녁적인 선택이며 부정정인 - 즉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을 거절하는 - 표현이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그 시대의 "원죄"에 대한 신학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인간의 무질서해진 상황의 근원을 가르치기 위해 그 "원죄"라는 것을 잘 활용하였다. 성인은 인간의 상황, 즉 자신이 비유하는 대로 "사로잡힌 몸의 불쌍한 상태"를 평가함에 있어서 이 원죄에 대한 신학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에 관에서 성인이 설명하는 것을 정확하게 종합하는 에물로히오 파초(Eulogio pacho) 신부의 글을 여기서 길게 인용해 보자.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 자신이 가진 그 존재로 말미암아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자연적인 생명을 누린다'(노래 A, 8,2), 또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또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영적인 생명을 누린다'(8,2). 말하자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또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할 그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영적인 생명을 누린다. '사랑은 목적인(目的因)을 가지는 것인 만큼'(23,5), 영혼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거기에다 자신의 목적을 둔다. 만일 인간이 목적을 하느님 안에 둥다면, 이는-성인의 말에 따르면(1; 2의 여러 곳 참조)-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표지가 된다. 만일 인간이 목적을 하느님 아닌 다른 무엇에 두거나, 하느님께 두지만 무질서한 상태로 목적을 그분께 둔다면, 인간은 자신이 자연적이고 초자연적인 목적에서 벗어나게 된다. 영혼은 '하느님과는 반대되는 것들을 향한' 그런 격정들 ; 경향들. 욕구들과 자연적인 애정들. 능력들로 인해서 처참한 지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자기 활동의 목적이신 하느님을 향해 자신의 행위들과 일들을 올바르게 방향 짓지 않는 동안에는, 무질서와 불균형 안에서 자신이 단정치 못하고 더럽혀진 그런 상태에 있게 된다. 이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 슬픈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이 하느님의 전능(全能)이라는 가마 속으로부터 나왔는데, 이는 태초의 정의(正義) 로운 날에(37,1) 하느님께서 그를 새하얗고 깨끗하게(31,3), 즉 무죄한 상태로, 깨끗합과 순결함으로 가득하게(37, 1) 창조하신 때의 일이다.'(33,3).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은총과 무죄함을 주신 태초의 정의로운 그 상태 안에서는, 인간의 감각적인 부분의 모든 조화와 능력들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또 더 상위(上位)의 부분과 평화와 일치를 유지하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인식에 도움이 되도록 인간은 섬겼었다.(31,5). 인간 전체는 자신의 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하느님을 향해 있었고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33;37의 여러 곳 참조)
어느 날, 이 본성(本性)이 첫 어머니인 하와 안에서 낙원의 나무에 의해 무질서해졌다.(28,1). 거기 낙원에서 원조들은 그 나무 아래에서 더럽혀졌다.(28,8). 그래서 인간은 초자연적 생명을 잃어버렸다. 하느님의 은총을 잃고 검고 추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24, 1-4). 죄의 추악함과 본성의 불완전함과 천박함(24,3), 그리고 사납고 앞을 못 보는(23,7) 그런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조화는 사라졌고, 영혼을 풍요롭게 했던 그 두 부분의 균형이 깨어졌다.(35.1), 영혼을 완전히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대신에, 각각의 부분이 제 자연적인 만족을 찾게 되었고, 육신, 즉 하위의 부분은 영혼, 즉 상위의 부분에 반발하게 되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봉사라는 것에는 반대되는 그런 성향들과 욕구들과 맛들. 애착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인간 본성은 하느님께 대한 봉사에 전적으로 바쳐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맛들 과 욕구들을 따라 못된 행위들- 쓸모없고 못된 일들 - 에 빠져들기 시작했다(19,4,5,6,9 참조). 영혼은 이렇게 은총과 태초의 정의뿐 아니라 자신의 궁극 목적이신 하느님께로 향하는 질서와 본성적 성향마저 잃어버렸다, 윤리적인 무질서는 인간의 본성 자체에 모든 면에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죄로 인해 생긴 이 깊은 내적(內的) 무질서 안에서 성인은 이로 인한 인간 안에 이루어진 직접적인 결과인 "죄로 인해 인류가 그 속에 빠져 버린 거짓에 대한 무감각과 본성적인 사나움, 그리고 영혼의 산란하고 겉으로만 맴도는 그런 생태"를 알아보았다. 본성적 사나움은 특히 인간이 그 속에서 얽혀서 살아가는 욕구들의 복잡하기 짝이 없는 그물 모양의 구조 속에서 잘 드러난다.